여행지는, 나처럼 그 곳을 딛는 사람의 발아래 땅이기도 하거니와, 하늘위에서조차 낮밤을 가리지 않고 직선 곡선으로 여닫히며 가까와지고 멀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의 첫날은 50cc짜리 스쿠터를 렌탈해서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고속주행이 불가능한 기계의 한계를 오히려 즐기며, 자연과 나와의 속도의 이질감을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해안도로를 따르는 내내 어깨에 걸려있던 수평선이 하늘의 푸름과 바다의 푸름이 분명코 다름을 날세워 말해주는데, 그 위로 얹혀진 햇볕은 좋을대로 좋았고, 숨길수 없이 새어나온 짠내는 내내 코끝을 오갔다.
쨍쨍한 자연에도 용감하게 살갗을 내어놓고 다닌 죄로 버얼겋게 익어 벌받은 하루, 몸속까지 화끈대는게 며칠 고생하겠구나 싶던 그것이 첫날
잠에서 깨게 만드는 스산함의 새벽 습격. 창밖으로는 열기를 식혀버리겠다고 비바람이 충만이다. 이역시 제주도의 변덕.이 변덕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짜증 아니면 재미일 터.
재미있기로 다짐을 하고, 아주 어설픈 우의를 둘러쓴채 빗속으로 돌진하였다.
사람들이 험한 날씨 탓에 나서길 피해준 바깥세상은 더욱더 자연이고 공간이었다. 그래서 더 재미.
차가운 빗줄기 맞바람을 뚫고 달리다보니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어제의 폭혐주행으로 얼굴이며 팔뚝이며 벌겋게 햇볕화상입은 사람하나, 오늘은 뼛속까지 비에 절여 빗불 뚝뚝 흘리며 덜덜 떨고 있으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덜덜 떨며 지나다 겨우 찾은 어느 마을 어귀 조그만 정자. 비를 피할 두어 평 지붕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그 지붕하나 있음이 얼마나 따뜻해지는 것인지 바로소 깨닫게 되었다
해안 중심이었던 첫날과는 달리, 둘째날은 오름과 숲을 선택, 비와 버무려진 초록의 숲은 바다의 짠내와 또다른 내음을 풍겨내고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 구불대는 좁은길들을 찬찬히 음미하며 지나기에는 성능낮은 스쿠터가 차라리 어울린다.
편안한 렌터카, 근사한 펜션, 곳곳의 맛집. 이것들을 다 주워담지 않고도, 눈과 코와 피부, 오감으로 흡수한 제주도의 테두리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듯하다.
요약
첫날 : 제주 서편 해안일주, 해안길, 바다, 짠내음, 폭염, 화상
둘때날, 제주 동편 오름을 관통한 일주, 비탈길, 숲, 숲내음, 거름내음, 폭우, 물에빠진 생쥐.